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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과 불운, 불편, 해방/사회, 사람, 직업

illy의 뜻 - 부정적 의미가 힙이 될 때. 그 새로운 힘과 전복 가능성에 대해서

by 불타는 유리공 2020. 4. 11.

 

 

illy라는 단어가 들어가있는 어느 한 카페 이름을 보고 대체 이게 무슨 뜻인가, 왜 저 단어를 카페이름으로 붙였는가에 대해 잠깐의 논쟁이 있었습니다. (* 에스프레소 전문 커피 체인인 일리 커피의 'illy'는 설립자 프란체스코 일리에서 성을 딴 것입니다. 이 글을 쓰게 한 커피 점은 물론 일리 커피가 아닙니다.)

 

그렇게 알게된 이 단어의 뜻에 대해 공유해보려합니다. 

 

illy아프다, 할 때 그 ill의 변형인데요, 상당히 부정적인 뜻으로 보이죠?

형용사형이니 '아픈' 이라는 뜻일테죠. 혹시 다른 뜻은 없나 동의어 (synonyms)을 찾아볼까요?

 

ill = evil, wrong, ill, desperation, bad, wickedly, foul, vicious, pathetic, inapt, unskillful, backhanded, ailing, nasty, unfavorable, disgusting, sick ... 

장난 아닙니다. 악하고, 나쁘고, 형편이 안 좋고, 불완전하고, 서툴고, 병들었으며 심술궃고, 메스껍기까지 하다는 - 온갖 부정적인 뜻으로의 가지치기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Urban Dictionary를 살펴보면 이 illy 라는 단어는 오히려 청소년~젊은 성인들이 쓰는 slang, 즉 유행어로 기능했던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2003~2009년 무렵에 소위 cool이나 crazy와 비슷한 문맥으로 쓰였던 것 같습니다.

 

소위 힙하다, 혹은 하위문화적 맥락에서 갠-쥐가 난다, 는 뜻으로 칭찬할 때 일반적인 표현을 쓰지 않는 모습들을 우리는 알고 있죠. 미쳤다는 뜻의 crazy도, 과거에 사람들이 생각하는 '광인'의 이미지는 어딘가에 수용되어있을 법한, 공감할 수 없는, 우리와 굉장히 다른... 어떤 타자의 모습 등으로 정상인과 굉장히 선을 그었던 것 같은데, 현재 '나는 미쳤다'는 말은 어떤 자유분방한 자기 표현의 방식으로서, 꼭 중한 정신적 병증을 가리키는 게 아닐 뿐더러, 그런 특징이 있다 하더라도 다양성의 측면에서 보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illy 또한, 퇴폐적이고, 약한 것 처럼 몽롱하고, 서늘한, 그런 느낌들이 곧 새로운 멋있음이 되는 어떤 표현이 될 수 있었던 것이죠.

 

한편 퇴폐미를 긍정하는 방식의 힙은 사실 뭐 그렇게 신선한 미의식은 아니고, 그 나름의 부작용 또한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어떠한 부정적인 표현들이 시대에 따라 또, 하위적 목소리에 따라 결국 어떤 힙이 되고 슬랭이 되는 경우들을 상상해보면,

 

결국 변두리에 위치한 무엇도 시대적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혹은 적어도 작은 생각의 전환만으로도 새로운 힘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언어 사용이란 참 신비로운 것이, 작은 변화이면서도 반복되고, 일상적이면서도 폭발적으로 퍼져나가 결국엔 어떠한 종류의 전복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는 듯 합니다.

 

 

 

20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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